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3국 동맹 전쟁 (문단 편집) === 우마이타 포위전(Siege of Humaitá) === 라플라타강 유역이 브라질에게 점령당하자 파라과이는 우마이타 요새(Fortaleza de Humaitá)를 중심으로 한 방어전을 준비했다. 강과 늪으로 접근조차 어려우며 강변에는 파라과이의 육군이 버티고 있는 천해의 요새로 파라나강에서 파라과이 강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박힌 우마이타 요새는 함락당하면 바로 [[아순시온]]까지 뚫림을 의미하기 때문에 파라과이판 [[산해관]]이나 마찬가지였던 곳이었다. 따라서 우마이타 요새 안에 군수공장과 제철소를 박아놔서 무기 자체 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병력도 1만이 넘어서 절대 함락이 불가능한 곳으로 여겨졌고 그 명성이 대단하여 '남아메리카의 [[지브롤터]]'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였다. 1년간의 공격에도 우이마타 요새를 중심으로 한 파라과이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3국 동맹군을 막아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전장의 분위기는 3국 동맹군 편으로 흘러가고 있었다. 4월 16일부터 23일까지 우루과이군은 우마이타 요새 인근에 위치한 늪지대인 에스테로-벨라코(Estero Bellaco)를 차지하는데 성공한다. 이에 로페스는 이곳을 재탈환 하기로 결정하고 군대를 투입시켰고 1866년 5월 2일 파라과이군 6천여 명과 3국 동맹군 8천 명이 맞붙은 에스테로-벨라코 전투(Battle of Estero Bellaco)가 벌어졌다. 첫 교전에서 파라과이군이 승리를 거두었으나 3국 동맹군을 무리하게 추격하다가 오히려 역습을 당해 역으로 몰려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은 채로 물러났다. 이렇듯 3국 동맹군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결국 물량 앞에 장사 없다고 끝내 모든 난관을 넘었다. 특히 브라질은 우마이타 요새 공성전에서 많은 피해를 입자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회하면서 [[아순시온]]과 우마이타간 연결고리를 끊으려 우마이타 근방 요충지를 하나하나 공격, 점령했으며 밤중을 틈타 요새 포위를 막기 위해 파라과이군이 파라과이강에 설치한 쇠사슬까지 돌파하여 마침내 우마이타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. 이 소식을 듣고 로페즈는 파라과이의 마지막 정규군을 총동원하여 이 포위망을 뚫어내려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